2024.05.18 (토)
장애인수용시설 경주푸른마을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1심 판결이 내려졌다. 2019년 6월 26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형사2단독 재판부는 前 이사장 문씨에게 징역 1년을, 사회복지법인 민재 측에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푸른마을대책위는 지난 10년간 방치되어온 푸른마을 사건의 심각성을 재판부가 무겁게 받아들이고, 향후 유사한 시설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해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거주인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재판에서 다뤄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시설대표자가 거주인을 상대로 다단계 사기를 벌인 죄질에 비하면 이번 판결은 너무나 가벼운 처벌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판결은 지난 수년간 이사장의 직위에서 서서 시설을 사유화하고 거주인을 착취한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임이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주푸른마을 사건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2008년, 자폐성 장애를 가진 14살의 청소년 거주인이 시설 측의 정신병원 강제입원, 약물과다 투여 의혹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2018년 같은 사유로 또 한 명의 거주인이 뼈만 앙상한 몸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죽은 사람은 있으나, 죽음으로 내몬 자들은 시설에 남았다. 그 사이, 당시 정신병원 입원을 강권했던 전 이사장은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다단계업체에 거주인을 가입시키고 돈을 챙겼다.
문 전 이사장은 반성은커녕 재판장에서 줄곧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왔다. 그의 변호인은 피의자가 자신의 재산을 출연해 사회복지에 헌신해온 이력을 강조했다. 장애인시설 인권유린과 비리 문제가 터질 때마다 법인과 시설운영진들이 주장해왔던 내용이다. 그들을 언제나 말한다. 자신들이 장애인을 ’보호‘하며 복지증진에 이바지해 온 장본인이라는 것을. 그러나 시설이 거주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던 가족들은 절망했다. 푸른마을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거주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착취하고, 정신병원에 가둬 조용히 죽도록 만들었으며, 이를 ‘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을 뿐이었다.
우리 사회는 중증장애인을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찍고, 세상 밖으로 추방해왔다. 이 분리와 추방의 공간이 바로 ‘수용시설’이다. 그러나 사법기관은 장애인시설 인권침해를 ‘복지’의 이름으로 너그럽게 용서했고, 행정청은 적당히 사법처리가 끝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해왔다. 그 결과, 경주푸른마을은 10년째 문제가 곪고 곪아 또다시 거주인이 사망하는 비극을 낳았으며, 책임자와 가해자들은 별다른 처벌 없이 시설을 운영하며 온갖 인권유린과 불법을 자행했다. 경주시내 법인과 산하시설들 역시 마찬가지다. 2014년 사회복지법인 상록수와 산하시설인 선인재활원,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지역사회를 분노케 했던 혜강행복한집 역시 행정청의 방관 속에 일가족과 친·인척들이 운영권을 세습하고 내부 인권유린과 부정비리를 키웠다.
경주시는 시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사법처분’이 있기 전에는 조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1심 선고가 내려진 지금, 이제 푸른마을은 어떻게 될까? 가해자들은 법의 판단을 받았으니, 사태를 수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거주인의 삶이 치유되고, 권리가 다시 회복되는가? 푸른마을과 같이 극단적인 범죄행위가 드러나지 않은 시설은 인권유린으로부터 안전한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광주 도가니, 인강원, 남원평화의집, 대구시립희망원 등 이름만 다른 시설 문제들을 무수히 목격하며, 일부 가해자들을 쫓아내는 것만으로는 시설 인권침해가 결코 해결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삶을 꾸려갈 기회를 박탈하는 ‘수용시설’ 그 자체가 이미 인권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대책위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시설 인권유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장애인수용시설 인권유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 처벌과 퇴출은 물론, 장애를 이유로 시설로 ‘추방’당하지 않고 동등한 시민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것이 반복되는 장애인시설 인권유린과 부정비리를 막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이에 우리는 경주시에 반복되는 장애인수용시설 인권유린 사건의 책임을 단호히 물으며,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우리는 이번 재판에서 드러나지 않은 거주인 사망사건과 총체적인 인권침해 문제의 진상을 끝까지 밝혀 나갈 것이다. 또한, 단 한 명의 장애인도 ‘장애’를 이유로 지역사회 바깥으로 추방당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경주시의 근본적인 탈시설·자립생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싸워나갈 것이다.
▶ 경주푸른마을 가해자를 즉시 퇴출하고, 사회복지법인 민재를 해산하라!
▶ 현 이사진을 전원 해임조치 하라! 지역사회가 신뢰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공익이사진을 신속하게 구성하라!
▶ 수사로 드러나지 않은 총체적인 인권침해 문제에 대하여, 종합적인 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를 진행하라!
▶ 인권침해 및 범죄 가해자와 책임자, 연루 공무원 전원을 철저히 조사하여 강력 처벌하라
▶ 가두는 것은 복지가 아니다! 더 이상 장애인이 시설에 수용되지 않도록, 시설에 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탈시설·지역사회 자립생활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2019년 6월 26일
경주푸른마을인권침해사건진상규명대책위원회
경상북도장애인부모회 경주시지부, 건천석산개발반대대책위원회, 겨레하나경주지회, 경북노동인권센터, 경주시민당(준), 경주시민총회, 경주여성노동자회, 경주학부모연대, 경주환경운동연합, 노동당 경주시당, 민주노총 경주지부, 민중당 경주시당, 전국여성노동조합 대구경북지부, 참교육학부모회 경북지부, 참소리시민모임,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