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동상이몽(同床異夢)”
누구나 알고 있음직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눈물과 더불어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 뜻을 모른다."
이 세상에 누가 가난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겠는가? 그러나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기에 죄일 수 없으며,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가난하다.
반대로 부유한 부모를 둔 소수의 사람들 역시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 비방 받을 일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 이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기에 큰 자랑거리는 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인생의 참 뜻을 알기 위해 굳이 금수저를 마다할 이유야 없겠지만, 금(金)수저들이 목(木)수저조차 하나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인생의 깊이를 알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의 태생과 살아온 과거를 살피게 되는 것이며, 이는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과는 좀 별개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살벌한 전장의 지휘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책으로 읽은 손자병법(孫子兵法)이 아니라 그가 가진 전투경험이며, 실전경험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상황판단에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지식이 된다.
때가 되었다고 민생행보를 다니는 사람보다는 이미 민생을 체득(體得)하고 있는 사람이 더 민생을 잘 이해할 수밖에 없고, 민생을 제대로 알아야 민생정책도 바로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생에 찌든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타인은 멸시하고, 항상 백마 탄 왕자나 금(金)수레를 타고 나타 난 공주가 자신들을 구해 줄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마치 유대인들이 마구간에서 태어난 동족인 예수는 따르지 않고, 또 다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듯이.....
왜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모두가 위대한 지도자를 기다리며 그가 자신을 구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운다고 했다. 모두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앞장서지 않는다면, 지금 확성기를 들고 민생투어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나 태평양을 건너 비행기를 타고 나타난 사람이나, 그 누구도 우리의 구세주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그들이 정말 새로운 세상을 원할까? 가진 것만 지켜도 되고, 누려온 것만 누려도 되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 살기 좋은 세상을 바꿀 것인가?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세상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한다. 즉 한 쪽은 더 많은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에 관심이 있지만, 한 쪽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나 생존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旣得) 권력은 항상 '안보(安保)'라는 무기로 대중을 위협하고, 기득 자본은 항상 경제라는 무기로 서민을 협박한다. 그들이 지배하고 설계하는 세상은 항상 그들을 위한 것인데, 대중들은 늘 그들에게 서민을 위한 세상만을 주문해 놓고는 실망하고 분노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영웅이나 메시아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 난세의 영웅이 되어 더 낳은 세상을 만드는 데 직접 나서야 하고, 또 가장 평범한 하수인을 뽑아야 우리가 그의 주인 노릇이 되지 않겠는가? 평범이 비범을 낳는 수는 있어도, 비범은 평범을 만들지 않는다.